2010년 9월 9일 목요일

[도서] 스님, 불 들어갑니다.



스님, 불 들어갑니다.(임윤수, 불광출판사)


이 책은 재료공학상 상변태(相變態)에서부터 삶의 심변태(心變態)까지 관심의 폭을 넓힌 재료공학박사인 저자가 열일곱 분 선사들의 다비식을 직접 찾아 다니면서 현장의 풍경과 느낌을 섬세하게 전해주고 있는 글이다. 그 분들은 다름아닌 서암, 청화, 정대, 월하, 서옹, 지안, 정일, 석주, 숭산, 혜산, 법장, 만봉, 명안, 정찬, 현광, 정공, 원담 큰 스님 등 모두 한국 불교계에 큰 가르침을 남기신 위대한 스승 들이다.

일반적인 다비장의 이동 순서로는 죽은 사람의 저승길을 인도하는 인로왕번, 스님의 법호를 적은 명정, 보신, 법신, 화신의 삼신번, 동, 서, 남, 북, 중방의 오방번, 불교기, 무상계, 법성계, 오도송, 열반계, 만장, 향로, 영정, 위패, 법주/독경단, 법구, 방송차량, 문도, 선방 스님, 장의위원, 비구, 비구니, 신도의 순이지만, 사찰이나 문중의 전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한다.

상여의 꾸밈이나 연화대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아무런 꾸밈이 없는 알관 상여도 있고, 화려하게 장식된 꽃 상여도 있다. 연화대의 모습도 돌로 쌓은 석곽, 철로 만든 철궤, 새끼줄타래를 쌍아 만든 새끼줄 연화대, 생나무를 쌓아 만드는 생나무 연화대 등 다양하다고 전하고 있다. 연화대의 조성시기도 법구가 이운되기 전에 미리 만들기도 하고, 이운된 후에 만들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태어나 살아온 모습처럼 죽음의 모습도 그렇게 겉으론 다른 모양이다.  그러나 그 실상(實相)은 결국 태어난 본 고향,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되돌아 가는 것임에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아마도 ‘집짓는 자’들이 더 이상 집(業)을 짓지 않도록 하고, ‘불타는 집’을 바라보도록 함으로써 삶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려는 마지막 구제의 법문들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거화를 한 후 법구가 제대로 수습되는지를 살피지 않고 미리 돌아서서 등돌리며 제 갈 길을 재촉하는 속세의 매정함(204쪽 등)과 직접 목탁을 치며 염하는 스님의 모습은 갈수록 보기 힘들고 녹음테이프로만 들리는 가벼운 일부 승가의 세태(205쪽 등), 다비되다 남은 스님의 법구가 그대로 노출되는 절차의 미숙함(206쪽) 등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나아가 영결식을 포함해 다비 준비와 절차, 연화대를 만드는 방법이나 소요물 등을 세세히 기록한 교범서(manual)라도 만들어 기록으로 남기고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남기고 있다.(220쪽) 일부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숙하고 부족함이 있다면 그런 부족함조차도 있는 그대로의 법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 본다. 애초에 법(法)이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들이 아니었던가.

책의 부록에는 큰 스님들이 남긴 오도송과 임종게를 정성스럽게 덧붙여 전하고 있다. 이미 호흡은 없어도 큰 스님들의 가르침들은 그림자의 그림자(83쪽)처럼 영원히 살아있음을 본다. 비록 그림자 없는 곳에서도 밝은 달은 그렇게 항상 떠 있다.(無一影處顯示行)(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