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우리를 갈라서게 하는가
본질을 변하지 않게 하는 것들은 역시나 사랑이다.
한계적인 인간은 예외없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때로는 그 환경이 본질들을 달라지게 한다.
그 달라진 본질들로 인하여 우리는 간혹 사랑조차 왜곡해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본질이 달라지는 것들은 애당초 사랑이라 불리워져서는 안될 것이리라.
형 진태의 동생 진석에 대한 사랑,
어찌보면 맹목적이고 저돌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나는 거기서 사랑의 본질을 본다.
사랑은 그렇게 사상과 이념을 뛰어넘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초월하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본질들이 아니리라.
전쟁만큼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삶은 없으리라.
삶과 죽음이 동일선상에서 교차하는 그 극한 상황 속에서도 형은 동생을 가슴에 품고 있다.
어떤 총부리와 포탄도 위협이 되지 않고,
죽음조차 그 둘을 갈라서게 하지 못한다.
순간적이나마 그들을 돌아서게 한 것은 바로
이 어지러운 세상과 섣부른 관념과 오해들이다.
어찌보면 미치지 않고서는 단 하루도 제대로 서 있을 수 없는 이 미친 세상,
적당히 미치는 것이 당연한데도 똑바로 서 있는 사랑들이 있다.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 영화 속에서 나는 그들을 본다.
형 진태가 동생 진석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비록 지식을 배우지 못했어도 진실은 제대로 배운 듯하다.
때로는 아는 것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다 더
치명적인 병일 수도 있는 것이다.
어머니와 연인과 그리고 그들을 엮고 있는 돌아가신 아버지,
어찌보면 요즘의 우리들이 잊어가고 있는 부분들은 아닌가.
달라지지 않는 본질들은 뿌리에서 나온다.
뿌리는 후천적인 것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일 수도 있다.
보잘것 없는 뿌리나마 그리워할 수 있는 그나마의 제도와 환경에 감사하며,
잃어버린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속의 삶과 사랑이 그리워진다.
젊은 시대에 강압적인 제도의 구속과 그로부터 파생된 제한된 여건 속에서
본의와 상관없이 우리들의 본질들을 도둑 맞은 적이 있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투쟁하며 죽음으로 항변한 사람들도 있었고, 또 때로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스로를 침묵과 냉소로 세월을 흘려버린 시간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잃어버린 본질들을 되찾을 때다.
깨어있으므로 본질적으로 다시 사랑할 때다.
영화 속의 진석과 진태,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그 진한 감동들처럼 다시 살아갈 때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들 하질 않던가.